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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외가 전주(全州) 이(李)씨 이성군(利城君)파

외조부 독립운동 발자취

by 사시투사 2023. 2. 25.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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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군(利城君)은 연산군, 광해군과 같이 ~군(君)으로 봉해진 이름으로 이름이 아니다.

 

이름은 관(慣).

 

솔직히 말하면 이런 지루한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우리 외조부에 대해서 설명하려면 어쩔 수 없으므로 설명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1. 전주 이씨 이성군파의 집성촌은 충남 서산 부석면 강수리이다.

 

오늘 거의 마지막으로 남은 나의 외조부 이갑훈(李甲薰, 1897~1965)의 조카이자 나에겐 5촌외삼촌(외당숙)인 이용일(1933~) 외당숙을 만나뵙고 왔다.

 

원래는 구자 돌림인데 돌림을 쓰지 않으신 것 같다.

 

우리 외할아버지의 돌림자는 훈(薰)자 인 것 같다.

 

 

이O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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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O훈(薰) - 나의 외조부의 항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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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O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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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O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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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O연

 

나의 외조부를 전후의 항렬은 대충 이정도로 정리되는 것 같다.

 

족보를 획득하고 싶으나,

 

족보를 만든다 어쩐다 하더니 만들 사람이 없어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사회에 그것이 큰 의미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어쨌든 나의 5촌 외삼촌(외당숙)은 당시(20세기 중반)에는 전화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지만,

 

100리 밖에 사는 사람이 뭘 하는지까지 알았다고 한다.

 

 

2. 이용일 외당숙의 증언:

 

나의 외조부 이갑훈은 사람들을 인솔해서 만주로 자주 갔다고 한다.

 

그리고 태안으로 자주 나갔다고 한다.

 

발이 넓어 거의 집에 없었다고 한다. (외당숙모 또한 작은어머니(나의 외할머니) 네 집에 가서 '작은 아버지 어디갔냐' 그러면 항상 '태안에 갔다' 그러더라고 한다)

 

나의 외조부의 형제는 4형제로 나의 외조부가 셋째, 이용일 외당숙의 부친이 넷째다.

 

용일 외당숙의 부친은 면서기를 했다고 한다.

 

당시에 면서기면 대단한 자리였다고 한다.

 

당시 지역 유지였던 전주 이씨 이성군파의 많은 이들이 면서기 등의 벼슬을 했다고 한다.

 

 

3. 수사

 

우리 외조부도 면서기를 했으면 되었을 것인데 왜 안했을까?

 

그것은 바로 일제의 하인가 되는 자리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외조부 이갑훈은,

 

쉽게 말하면

 

양반으로서 일종의 지역 유지였던 일가 친척들이 전부 친일을 하였지만

 

본인만은 독립운동을 했던 것이다.

 

일종의 일가의 골칫덩이였던 셈이다.

 

현대로 치면,

 

일가 친척들이 전부 로스쿨 교수, 로스쿨 출신 변호사, 로스쿨 출신 판검사, 로스쿨생 이러고 있는데

 

외조부 혼자 거기서 사시부활운동을 하고 앉았었던 것이다.

 

답답한 노릇.

 

뭐가 답답하냐면 기록 한장 남겨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기록이라도 있었다면 그의 독립운동 기록을 밝혀냈을 것인데,

 

 

4. 엄마의 말:

 

로 외할머니 혼자 집에 있을 때

 

일본경찰 같은 사람들이 와서 '조센징 어디갔어' 라며 집을 뒤지곤 했다고 한다.

 

 

5. 외당숙의 말:

 

외조부는 밖으로 잘 나돌아다녔기에 용일 외당숙 말로는 그럴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6. 수사

 

그러니까 결국 조선시대 양반이자 친일파까지는 아니어도 적당히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지역 유지 가문에

 

독립운동을 하는 엉뚱한 사람이 바로 우리 외조부였던 셈인데,

 

그러다보니 잡히면 지역유지인 우리 외조부의 부친이나 친형제, 일가친척들이 빼내주고,

 

수사도 받지 않게 잘 무마하여 수사기록도 없고,

 

그러다보니 당연히 판결문도 없고, 

 

당연히 감옥에 갇힌 기록도 없고,

 

그러다보니 기록이 없어서 밝혀낼 수가 없는 것이다.

 

난 절대 우리 외조부가 친일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친일을 했다면 면서기를 했을 것이고, 우리 엄마와 엄마 형제들도 그렇게 못살지 않았겠지.

 

도대체 보훈처와 독립기념관은 뭘 하는지 모르겠다.

 

당장 우리 외조부 이갑훈(李甲薰, 1897~)의 독립운동을 밝혀내라!

 

 

7. 한편,

 

이길훈 전 서울시의원. 나의 외조부 이갑훈과 4촌 내지 6촌지간이다. 나에게는 6촌 할아버지 내지 8촌 할아버지인셈. 그가 이성군파 종친회장을 했고, 고양시로 이성군묘를 이장했다고 한다.

 

이길훈 전 서울시의원(좌측)과 그의 아들 이범구 가천대 의대 교수

이길훈(李吉薰) 전 서울시의원이 우리 외할아버지와 5촌이라고 하는데 우리 엄마와 5촌인 것 같다. (아니면 외할아버지와 6촌이겠지. 항렬이 같은데 5촌은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길훈 전 서울시의원은 나에겐 6촌 할아버지 내지 8촌 할아버지인 셈이다.

 

그의 아들이 이범구 가천대 의대 교수다.

 

 

 

또한 이춘우 전 부평구의원도 우리 집안(이성군파) 사람이라고 한다. 이분은 정확히 몇촌인지는 모르겠다.(아마 우리 엄마와 7촌이라고 한다. 우자 돌림은 우리 엄마보다 한 항렬 아래이므로. 그럼 나와는 8촌인셈.)

 

힘 좀 쓰는 이성군파 종친회도 우리 외조부 이갑훈(李甲薰, 1898~1965)의 독립운동 사실을 밝혀달라!!!ㅠㅠ

 

 

 

ps. 어쨌든 부끄러운 일이지만 조선시대 양반들이 참 부끄러운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그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씻기 위해 우리 외조부 이갑훈(李甲薰, 1898~1965)의 독립운동 사실을 밝혀달라!!!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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